먼나라 여행

중국 황산여행10, 휘주 사람들

새잔차 2015. 11. 24. 01:21

패키지로 황산 여행을 가면 

휘주문화박물관(徽州文化博物館 Anhui China Huizhou Culture Museum)을 방문하게 된다.

 

이곳을  둘러 보면

휘주의 옛사람들이 환경의 악조건을 이겨나가며 적극적으로 살았는 걸 알게 된다.

 

휘주(徽州, 후이저우),

황산시의 옛이름이다.

 

이 지역은 사람들이 살기 고달픈 지역이었다.

 

 

 

 

지형적으로 이곳은 산이 많고 척박하여 농사 짓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래서 

휘주 사람들은 학문을 익혀 관리가 되거나

아니면

먼곳으로 가서 장사를 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이 박물관 한쪽 벽에 써 있는 글은 휘주 사람들의 힘든 삶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前世不修   生在徽州

十三四歲   往外一丢

 

七山半水半分田

二分道路和庄囩

 

"전생에 덕을 쌓지 못해  휘주에 태어났네.

열 서너살이 되면 외지로  떠나간다.

 

산이 칠이고 나머지는 물과 밭이 반이며

길 옆에 겨우 집과 밭이 붙어있다"

 

 

 

 

박물관에는 멀리 떠나는 남편과 헤어지는 여인의 모습을 전시해 두었다.

이런 모습을 대표적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건

대부분의 휘주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떨어져 살았기 때문일 거다.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고 

타지에서 억척스런 삶을 살아야 했던 휘주 남자들,

멀리 외지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네의 서글픈 삶이

이 모형만 봐도 그대로 그려진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부터 휘주(徽州) 출신 상인을 휘상(徽商)이라 하는데

중국에서 휘주상인(徽州商人)은 

신안상인(新安商人)으로도 불리며 상인집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재현해 둔 전당포는 휘주상인의 한 모습을 표현한 거다.

자신들의 과거 모습을 알려주는 박물관에

당당하게 전당포를 전시해 두는 건 조금 뜻밖이다.

 

우리에게 전당포는 부정적 개념으로 남아 있는데

휘주사람들 생각은 우리 네와는 좀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차를 판매하는 휘주 상인 모습도 보인다.

 

중국은 높은 산이 있는 곳에는 거의 차가 재배된다.

휘주사람들도 차를 생산하여 외지에 내다 팔았을 것이기에  

휘주상인이 차를 다루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산악지역이 많은 이곳 황산에서 생산되는 모봉(毛峰)차는

지금도 중국에서 알아주는 차라고 한다.

 

 

 

 

박물관 한쪽에 옥으로 만든 전시물이 있다.

얼핏보았을 때는 나무조각 장식품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옥을 조각하여 이렇게 정교한 산수화를 만들다니...

참 대단한 솜씨다.

문방사우도 휘주에서 생산된게 좋다더니...

이런 솜씨로 문방사우를 만드니 이곳 문방사우가 유명한가 보다.

정말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인가 보다.

 

 

 

 

 

휘주 상인 중에 가장 유명한 거부 호설암(胡雪巖)에 대해 가이드로부터 짧게 설명을 들었다.

어떤 거부인지 차후 살펴 볼 인물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상인들을 천시했기에 상술이 발달하지 못했는데 중국은 다르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거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휘상이란 이름을 얻은 휘주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휘주 지역에 대한 정보를 좀 찾아보았다.

 

이 지역의 지리적 위치는 절강성과 강소성의 경계 지역에 있고

주변에는 산이 많고 토지는 적어 항상 식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휘주사람들은 일찍부터 지역을 관통하는 신안강(新案江)을 오르내리며

부족한 식량은 인근에서 구하고

휘주에서 나는 목재,  차, 칠기, 문방사구류를 타지역에 내다 팔며 장강하류에서 상인으로 생활했다.

 

“농부가 셋이면 장사하는 사람은 일곱”이라고 할 정도로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 생활했기에

만력연간(萬曆年間:1567~1620)에는 장강 유역에 “휘상이 없는 도시가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주로 식량과 지역 생산물로 장사를 했으나

점차 범위를 확대하여 소금과 면포, 비단, 차, 그리고 경덕진의 도자기까지 거의 모든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양자강 중상류지역에서 생산되는 곡식, 목재, 약재,

그리고 화북과 동북의 면화, 콩 등을 취급하여

남북 상로와 동서 상로를 장악하고 대도시를 연결하는 유통망을 확보할 정도로 그 활동범위가 넓어졌다.

독특하게도 휘주사람들은 대부분이 상인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휘주학'이란 학파까지 창시하였다.

때문에 지식과 기품이 숭상되는  휘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문방사우

즉 붓, 먹, 화선지, 벼루는 중국에서 지명도가 있는 아주 유명한 제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