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창문을 여는 순간 온누리가 은빛세계다.
간밤에 비가 아닌 폭설(?)이 왔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
신기하게도 3월 중순으로 넘어가는 때늦은 시기에
많은 눈이 온 것이다.
창밖의 눈을 보니
아침 일찍부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어머니가 걱정이다.
오늘은 친구분들과 매달 모이는 날이다.
슬며시 말을 건내 본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다른 분들이 모임에 나올까요?"
"요즘은 기온이 높아서 금방 다 녹을텐데.. 뭐"
창문을 흘낏 보시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신다.
하지만 잠시후 전화가 울린다.
엄마의 기대와 달리
친구분들은 다른 날로 모임을 바꾸자고 한다.
모두 눈오는 날 외출이 걱정였던 모양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혼자 밖으로 나갔다.
소복히 쌓인 눈들은 걸음 걸음을 조심하게 만들었고
도로에 내린 눈들은 물로 변해 얼음섞인 샤베트처럼 가장자리를 흥건하게 했다.
눈 내린 인도를 긴장하며 걷지만
마음은 설레이고 즐겁다.
도서관 담장사이로 보이는 눈가지에 마음을 빼았긴다.
눈을 감싸고 있는 솔가지가 고맙다.
초록색과 흰색의 조합도 새롭게 보인다.
돌아 오는데
거리의 눈이 점점 녹기 시작한다.
현관에 들어 서는데
어머니는 외출 준비하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둥근 롤을 머리에 감은 채 앉아 계신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있다.
어떤 느낌이 전해 온다.
"이렇게 눈이 내린 날은 어디로든 눈 구경가야 되지 않을까요?" 하고 살짝 부추겨 본다.
어머니 얼굴에 금방 미소가 스쳐간다.
온 세상이 하얀 이런 날은 특별한 날이다.
그래.
어디로든지 눈구경하러 가야 한다.
우리는 근교로 나갔다.
호젓함을 기대했는데 벌써 선수친 사람들이 많다.
아름다운 설경을 찾아 감동하려는 건,
우리 모두가 지닌 자연스런 심정일 것이다.
가로수 위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 사이로 하얀 눈이 살포시 얹혀있다.
하얗게 바뀐 온누리가 배경이 되어
나뭇잎 위의 눈들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봄에 만나는 만개한 꽃잎처럼
연분홍빛을 은근하게 머금은 나무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화사한 품격은
4월 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리는 꽃잎이 아니라
기품있고 격조를 갖춘
고고한 아름다움이다.
눈길을 드라이브 하면서
어머니는 연방 큰소리로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차에서 내려 눈을 직접 밟아 보기도 하셨다.
그리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오래 전 네 아버지와 이 길을 걸으며 약속한게 있는데..."
"눈 올때 다시 둘이서 이 길을 걷자고 했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그 분은 이제 어머니 옆에 계시지 않는다.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전해진다.
어머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이날 우리는
테라스에 눈이 가득 쌓인
어느 카페에서
늦게 까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눈 오는 날이 좋다.
모두가 동심을 느끼는 날이다.
편안하게 위로받는 기분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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