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다.
알람이 울렸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보니 세수도 못하고 출발하게 되었다.
어두운 밤인데 어때...
밖으로 나오니 어젯밤 식당에서 본 사람들도 차를 타고 출발하고 있다.
블루파이어....
이젠의 속살을 보기 위해 잠도 못자고 이 밤에 떠나는 것이다.
우리도 차를 타고 산을 향해 간다.
산 등성을 지나는 것 같기도하고..
몇개의 검문소 같은 곳을 지나더니 좀 넓은 터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리니 주변은 어둡다.
한쪽으로 불빛이 보이기는 하는데 거의 어둠에 파묻혀 있다.
Denny는 우릴 남겨두고 어디를 잠시 다녀오더니 산행가이드 한명을 소개해 준다.
Denny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이 현지가이드와 함께 이젠을 올라가는가 보다.
그럼 그렇지...
운전하는 사람이 산에 올라 갔다 내려와 다시 운전을 하면....
너무 피곤하지...
보온되는 옷을 덧입고...
생수통과 초콜릿은 가방에 넣고...
손전등과 마스크도 챙기고...
운동화 끈도 조이고..
이젠으로 오를 준비를 마쳤다.
밤하늘은 별들로 총총한데도 주변은 여전히 캄캄하다.
여기서 이젠분화구까지는 산길 3km거리.
어두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젠산의 정상은 2779m이지만 분화구까지의 높이는 2386m다
지금 출발 장소의 고도가 대략 1850m니까 고도 536m높이를 더 올라가는 것이다.
가이드가 앞장서고 우리는 뒤를 따라 간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평지는 오래 걸을 수 있어도 산길 가는 것은 통 자신이 없다.
처음부터 부지런히 앞장서서 가지 않으면 곧 뒤처지는 내 형편을 잘 알기에 열심히 걸었다.
이런 산길에서 젊은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정말 힘든다. 확연하게 체력 차이가 난다.
아까부터 숨이 차고 헉헉거린다.
작은 애들도 다 올라 갔다는 길인데... 갈수록 나는 힘이 든다.
사토로 다져진 길은 처음에는 걷기가 괜찮았는데 올라 갈 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유황가스 냄새도 심하다. 총총하게 보이던 별들이 희미해 진 걸 보니 가스가 많이 차 있는 지역으로 들어 온 것 같다.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자꾸 쉬고 싶다.
아까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올라가야 하는데...
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동료들도 올라가지 못하고 안타까운 듯이 나를 지켜본다.
어쩌지... 올라 가야 하는데...
너무 힘든다.
속도 점점 메스꺼워지는 것 같다.
갈수록 심하다.
에구... 분화구까지 가지도 못하고 여기서 끝내야 하는가..
앞서가는 가이드가 곧 휴게소가 나오니 힘내라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서 지나갔다.
그래... 동료들에게 민폐 끼치는 것보다 휴게소까지가서 그곳에 남자.
겨우 겨우 휴게소에 도착했다.
내부에 탁자가 하나 보이길래 그냥 그 탁자에 엎드려 버렸다.
한기가 들면서 머리가 너무 아프다.
고산병 같다.
아... 이젠화산, 푸른불꽃...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포기라니...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여기 남을테니... 올라가라고 말했지만....
동료들은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남고
동료들은 올라 갔다.
좁은 공간,
어두운 탁자에서 한참을 엎드려 쉬고 있는데...
나 같은 증상으로 안으로 들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고개조차 들기 귀찮아 계속 엎드려 있는데 ... 어디선가 독일어과 영어가 뒤섞인 말소리가 들린다.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이 고산병 증세가 있다고 누구에게 말하는 듯하다... 주변 남자 목소리는 여기서 쉬어야 한다고... 자기에게 약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으잉.... 약.... 약이 있어..
그럼 나도 좀 나눠 달라고 해야지...
정신차려 고개를 들고 보니 열두서너살 정도되는 금발 여자아이가 괴로운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 엄마인 듯한 여성은 힘겨워하는 딸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옆에는 또 다른 젊은 여자 아이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서 있다.
인니어와 영어로 말하는 그 남자는 현지 구급요원인지... 가이드인지...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휴게소 안으로 들어 온 듯하다. 남자는 뒷배낭에서 뭔가를 꺼내서 아이에게 주는데 내가 고개를 드니 나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같은 증상인지 물으며 자신의 약을 사용하겠는가고... 당근이지.
손을 벌리라고 하더니 손바닥에 뭔가를 가득 부어준다.
으... 이 냄새, 이건 몇번 경험한 익숙한 냄새다.
손전등 빛에 얼핏 보니 그 남자는 초록색 병에 든 인도네시아 만병통치약 까유쁘띠오일(minyak kayu putih)을 들고 있었다. 모기에게 물렸을 때도 사용하고, 머리가 아플때도 사용하는...
약을 코에 대고 있으라고해서 그대로 하니... 거짓말처럼 띵하던 머리가 가라앉는다.
신기하다.
정말 만병통치약이네.
<카유쁘띠오일>
조금 있으니 모두 정신이 드는지... 엄마가 딸에게 계속 올라 갈지를 물으니 딸애는 올라가겠다고 한다.
불루파이어... 그 목적을 갖고 이 밤에 올라가는 길인데 포기하면 안 되지..
금발머리 여자애의 엄마는 또다른 젊은 여자애에게도 의사를 묻고,
나에게도 묻는다.
어쩔까하다가... 올라가기로 맘을 먹었다.
이들과는 걷는 수준이 비슷하니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
약을 준 남자는 천천히 올라가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한 조가 되어 이젠 분화구를 향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산길을 동행하면서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딸은 니나, 엄마는 애니, 젊은 여자애는 아그네스,
애니는 네덜란드인이고 남편은 인도네시아인이다.
자기는 딸과 함께 처져있지만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먼저 분화구로 올라 갔다고 한다.
내가 애니의 딸이라고 짐작한 아그네스는 한 가족이 아니라 벨기에인이었다.
우리는 서로 손전등을 비춰주면서 그 남자의 말을 상기하며 천천히 한걸음씩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도중 마다 애니는 딸에게 괜찮은가를 물고
나에게도 계속 'Are you ok?' 를 연발하며 나의 상태를 걱정해 주었다.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걸어 주었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작은 가방에서 쿠키를 꺼내 우리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올라가는 내내 애니의 친절과 격려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난 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만나 포기하려던 산행을 계속하게 되고..
그렇게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올라가다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분화구도 결국에는 다다르게 되었다.
힘들게 올라온 분화구 위에 서 있었지만 사방이 컴컴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다.
어둠 속에서도 저 아래쪽 분화구에서 연기가 계속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그 사이로 작은 푸른 빛이 보인다.
아... 저게 블루파이어인가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분화구 아래를 살피고 일출을 보기 위해 다시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애니가 딸에게 묻는다. 아래로 내려 가겠냐고... 니나는 내려간단다.
나도 선택을 해야 한다.
일출을 볼 것인가, 이젠의 속살을 볼 것인가
내려가기로 했다.
동료를 만나려면 내려가야 할 것같기도해서..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돌길이고 험해서 위험하다. 표지판에도 주의 표시가 있다.
어두운 이 밤에 손전등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이다.
아래로 내려 가면서 보니 애니와 니나는 방독면도 준비해 왔다. 이젠을 구경하려고 철저하게 준비한 것 같다. 사실 이젠의 유황가스는 바람을 타고 덮치면 이런 방독마스크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지독하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니 서양인들의 손에는 대부분 방독면 마스크가 들려있다. 이들의 준비 정신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는 니나, 애니, 아그네스>
나도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는지,,, 무거운 유황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로 내려 가는 관광객들은 무거운 유황을 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켠으로 비켜준다.
이 어둠 속에서.. 한밤중인데도 이들은 유황을 운반한다.
힘들게 일하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어 미안한 마음으로 길만 비킨다.
쉬.. 쉬... 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린 한쪽으로 비켜선다.
다행스럽게 유황광산 부근에서 동료들을 만났다.
동료들과 가야 하기에 애니 일행과는 헤어져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번 강하게 포옹이라도 하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짧은 언어로 마음을 다 표현 할 수 없었다.
동료들은 내가 휴게소에서 기다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자 놀랍다고 반가워 한다.
푸른 빛을 내는 유황가스가 분출되는 주변까지 가 보았다.
가스 분출은 바람 방향에 따라 변하는데 지금은 위로만 올라가는 안전한 상황이다..
고소증으로 고생 하며 올라왔지만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벌써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동이 트는 모양이다.
그래도 무사히 분화구 아래까지 내려와서 구경했으니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하늘을 보니 동녘이 밝아지고 있다.
별빛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달도 사라져간다.
이제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위를 쳐다 보니 아득하다.
저기를 내려왔다는 말인가...
어둠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내려왔으니 여기까지 왔지 밝은 낮이었다면 도저히 못내려 왔을 듯하다.
올라가다가 남편을 만난 애니를 다시 만났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애니의 가족이다. 왼쪽에 가이드인 듯한 사람은 이것 저것 설명 해주고 있고 남편은 큰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애니>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애니와 그 가족들을 뒤로 하고 다시 분화구를 향해 올라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들..
올라가는 길도 순탄하지 않지만
그래도 훨씬 여유롭게 갈 수 있어 좋다.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진해진다.
산등선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이미 지났기에
올라가면서 계속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순간 순간 변하는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가스가 햇살 비치는 분화구 위로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치 그림 그리듯 올라가는 흰 연기는 옥색 호수와 대조를 이루며 무척 멋있게 보였는데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안타깝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도 애니의 그 친절이 생각난다.
사실,
헉헉 거리는 힘든 상태에서 세 사람의 이름을 딱 한번 들었기에 실제로 그녀 이름이 애니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름은 가물가물 하지만 이젠에서 만난 그녀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보였을까
부끄럽지만... 아니다.
내 속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차갑고, 냉정하다는 말도 듣고.
남에게 관여하지 않으려는...
남의 사정이나 상황에 대한 배려보다는 항상 판단이 먼저 나를 지배하는데....
배려 능력 자체가 부족한...
그런데,
이게 원래의 내 모습일까..
그녀는 내게 과제를 던졌다.
'인도네시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여행 동부자바 이젠(Ijen)화산, 브로모(Bromo)화산 여행 2일차: 브로모 가는 길 (0) | 2014.08.08 |
---|---|
인도네시아여행 동부자바 이젠(Ijen)화산, 브로모(Bromo)화산 여행 2일차: 유황광산 (0) | 2014.08.07 |
인도네시아여행 동부자바 이젠(Ijen)화산, 브로모(Bromo)화산 여행 1일차: 이젠 가는 길 (0) | 2014.07.26 |
인도네시아여행 동부자바 이젠(Ijen)화산, 브로모(Bromo)화산 여행 1일차: 수라바야 기차 (0) | 2014.07.25 |
인도네시아여행 동부자바 이젠(Ijen)화산, 브로모(Bromo)화산: 여행준비 (0) | 2014.07.25 |